몇년 전 일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밤에 하릴없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인생 요약 30초" 따위의 제목으로 된 플래쉬파일을 접하게 됬다. 내용은 이렇다. 윌리엄 텔 서곡이 신나게 흐르면서 등장하는 아기는 자라서 유치원생이 되고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거친다. 열심히 머리 뜯으면서 공부해서는 대학에 들어가고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놀며 즐거워한다. 그리고는 머리에 필승! 따위의 구호가 적힌 띠를 두르고 열심히 준비해서 취직한다. 남자는 결혼을 하고 이제 부부가 된 둘은 자식들을 가진다. 열심히 그 아이들을 길러서 대학을 보낸다. 이제는 중년.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늙은 부부는 자식이 일나간 사이 손자 손녀들을 돌본다. 꼬부러진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은 그전과는 비할 수 없이 노쇠한 모습. 곧 숨을 거둔다....




철모르던 나에게 이 짤막한 30초짜리 클립은 제법 크나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한 개인이 이 세상에 태어나 죽기까지 경험하는 크고 작은 특별한 일들은 걸러내고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한 문단짜리 인생 요약본을 만화로 옮긴 듯한 이 클립을 보고 난 내 첫 반응은 이랬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렇게 간단한 요약할 수 있는게 아니야! 우리 모두의 인생은 각자 특별 하다고! 감히 사람 인생을 30초 따위에 얄팍하게 요약하려 들다니 괘씸한지고!" 나는 이 얄팍해보이는 30초 짜리 클립이 심어주고자 하는 아이디어에 완강히 맞섰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살면서 부모님 으로부터, 학교 선생으로 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등으로부터 반복적으로 듣는 속담, 격언 등의 짧고 인상적인 말들이 가지는 진리는 무시할 것이 못됨을 느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기회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준비하는 인생을 강조하는 속담/격언 카테고리에 하나 더 추가하자.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의 흐름은 가속화 된다고. 지겨울 정도로 시간이 가지 않던 어린 시절. 총알 처럼 지나간 대학 4년 동안의 기억은 부산에서 보낸 중학교 2.5년의 기억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다. 채널을 넘기다가 보게 된 "크리스마스 특집 나홀로집에 1/2/3편 마라톤 광고" 는 1년 전 크리스마스 시즌에 본거지만 어제 본거처럼 생생하다.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라 들뜨던 그 느낌이 사라졌다. 선물때문에 기대되던 그 시절은 아주 오랜 옛날이고 방학이라는 의미에서 설래던 느낌도 없어져 버린거 같다. "벌써 크리스마스야?" 라며 예전보다 배는 빨리진 거 같은 시간의 흐름에 감탄할 뿐.



대학교 새내기 시절 알게된 사람이 하나 있다. 나이 서른 즈음 된 이 사람은 연세대/서울대에서 교육을 받았고 여느 서울대생이 그런 것처럼 (뭐 선입견에 해당할 뿐일지라도) 아는 게 많았다. 자기 관리가 철저했으며 목표의식이 분명했다. 자신의 계획대로 1 년만에 석사를 따고 이름있는 학교로 박사를 떠난 이 사람과 나는 사실 겨우 몇번 얘기를 나눠봤을 뿐이다. 서른이 넘을 동안 총각인 그는 길가다가 이쁜 아가씨를 봐도 반응이 없다시피 할 정도로 성욕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그것보다도 더 충격적인 말을 던졌는 데 "사는 것이 조금씩 조금씩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라고 했다. 그는 또한 나이 서른즈음이 되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에 대해 (자기 자신의 성격, 성향, 인생에 있어 얼마만큼 타인을 위해 줄 수 있는지, 얼마만큼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될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 대화를 나눈 후로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하고 나와 상호작용 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유심히 관찰했다. 그 결과 나는 내가 대부분의 타인들과 비교해 다른점을 자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내가 타인과 다르게 때문에 손해보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고치기에 쉬워 보이지 않는 그 다른점을 고치는 일이 남았다. 나이 서른보다는 훨씬 전에 깨달았으니 기쁘긴 하다.



나는 꿈쟁이였다. 초등/중학 시절 학교와 학원 교실에서 보낸 숱한 시간동안 나는 제대로 선생이 하는 말에 집중해 본 적이 없다. 수업시작 후 첫 5분이나 수업 중간중간에 선생들이 던지는 농담, 재미있는 이야기, 남북한 정치 이야기 할 때만 빼고 제대로 수업을 하는 동안에 나는 내 1200cc 짜리 뇌 안에서 딴 생각, 혹은 온갖 종류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내가 부자가 되면 뭘 할까에 대한 답은 수없이 많이 생각해 봤지만 부자가 되려면 얼마나 고생을 해야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 없는 나는 그때 정말 순진했었다. 대학생이 되기까지 한번도 내 손으로 돈 한번 벌어 본 적 없고 거의 평생을 아버지가 벌어 놓은 자본 속에서 딱히 곤란함 없이, 내가 돈을 쓰는 패턴이 집안에 미칠 영향을 고민 해볼 필요 없이 쉽게 돈을 써온 나는 요새 시급 10불을 받으며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그리고 나처럼 들어오는 시각과 나가는 시각에 카드를 찍으면서 일 한 시간 만큼 돈을 받는 간호사로서 오랜 시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을 보며 남의 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진리를 몸소 실감하는 중이다.



내가 과연 무엇을 하고 싶고 그걸 이루기 위해는 뭘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여태껏 해본 적 없는 탓에 나는 그 죄값으로 요새 방황하고 있다. 대학 졸업을 코앞둔 지금에 그런 고민을 하기는 많이 늦었다. 모든게 잘될 것이라고, 내가 상상한 것 만큼 터무니 없을 정도는 아니더라고 비교적 넉넉한 삶을 누리게 될 거라고 낙관했었다. 평범한 삶보다 더 특별한 삶을 살거라 기대했다. "나는 절대로 커서 아빠처럼 연구때문에 골치아프고 주말되면 맨날 피곤해서 집에만 있지는 않을거야." - 어려서 수없이 했던 그 말을 머릿속에서 되네일 때 마다 나는 얼마나 내가 철없었는지를 실감한다. 지금은? 내가 고를 수 있는 옵션은 얼마 되지 않고 그 옵션 중에서도 쉬운것은 없다는걸 깨달았다. 남들처럼 살려면 집도 차도 있어야 되고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 줄 수도 있어야 한다. 차보험하고 의료보험료도 내야 하고 달달이 내는 전기료 난방료도 내야 한다. 장볼 돈도 있어야 된다. 자기 입 뿐만 아니라 4인 가족의 입을 다 책임지기 위해서는 어느정도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죽어라고 노력 해야 하는가? 그러고 난 다음에 나는 그러지 않을때 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긴 꿈에서 깨어나 현실과 마주하기 전에 고르는 한숨이다. 극복해야 할 결함, 상상의 깨어짐, 준비 되어 있지 않음, 그리고 빨라지는 시간...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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