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입는 초록색 유니폼이란 신기한 물건이다. 그걸 입고 있지 않는다면 내가 하는 말에 그리도 귀를 기울이고 내가 무슨 의학적 지식이라도 있는 마냥 자신들의 건강 문제를 얘기할까. 등이 너무 아파서 들어온 40대의 이 아저씨는 나를 간호사나 의사정도로 착각한 듯 보였다. 나는 그냥 테크니션이고 좀 있으면 의사가 들어와서 질문을 할꺼래도 나를 놔 주지 않는다. 발에 이상한걸 차고 있길래 물어보니까 십수년전 군인이었을 적에 휴가중에 발이 차에 깔리면서 몸에 돌아가는 바람에 spiral fracture 가 나면서 발목이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얘기를 계속 듣자하니 이 아저씨는 그 사고가 휴가중에 난게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일중 하나 이지 않나 싶다. 아마 복무중에 일어난 일이었으면 평생을 보상금을 받으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이야기가 질려가려는 차에 간호사가 무전기로 나를 보자고 한다.



이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는 손을 제초기에 좀 베었나 보다. 기름이 묻은거 같은 별로 깨끗하지 않는 타월로 손을 감싸고 있는데 군데군데 피가 보인다. 일단 대야에다가 따뜻한 물에 비누를 풀어서 손을 씻긴다. 타월을 걷어 보니 왼손 엄지 안쪽으로부터 손바닥까지 제법 길게 베었는데 그리 깊게 베인거 같지는 않다. 비눗물에 스펀지를 적셔서 상처주위를 살살 닦아 보는데 상처 안쪽에 초록색 잔디 조각이 한두개 보인다. 어찌 된일이냐고 물어보니 잔듸깎는 일을 하는데 일하다가 제초기를 멈춘 다음 칼이 도나 돌지 않나를 보려고 손을 갖다 댔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이 아저씨 손은 굳은살이 박힌게 가죽소파를 연상시킨다. 보통 그정도 길이로 베이면 상처가 열리기 마련인데 이 아저씨 상처는 그런게 없다. 찢어진 상처는 찢겨진 두꺼운 소가죽 마냥 거칠다.



휠체어에 탄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한쪽 손을 다른 한손으로 붙잡고 들어 오고 있다. 아마 팔을 다쳤나 보지 싶다. 들어가 보니까 친구들하고 밤중에서 술마시고 파티하다가 계단을 굴러떨어지면서 한쪽 손목을 부러뜨린거 같다. 프론트데스크에 있는 청년 말로는 손목이 완전히 부러졌는지 손목이 기억자로 축 늘어진 걸 봤다고 한다. 내가 뼈가 부러져 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없다. 근데 어지간히도 아픈가 보다. 팔목에 혈압계 커프를 채우고 손가락에 pulse ox 를 씌우는 동안 아프다고 신음을 한다. 간호사가 제법 쎈 진통제를 주고 나서야 괜찮다고 한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손목뼈 길쭉한 두개가 완전히 부러져서 어긋나 있다. 몸속을 들여다 볼수 있다는 거 참 편리한 거다. 얼마전에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서 친구들 도움을 받아서 응급실로 들어온 영어를 한자도 못하는 멕시코 청년은 CT 를 찍어보니 머릿속 한가운데에 혈관이 터져서 피가 고였는지 하얗게 뜬 덩어리가 보이더라.



응급실 12 개실중에 3번 방은 특별한 방이다. 대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환자들을 들이는 방인데 행여나 위험한 물건을 집어서 자살하지 말라는 뜻인지 침대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방 안에 한 명 문 뒤에 한명 경찰들이 서있는거 보니까 아무래도 술먹고 난리를 피우다가 잡혀서 온거 같다. 담당 간호사 얼굴을 보니 환자 하는 행동에 이미 짜증이 날 대로 난 모양이다. 목마르다고 난리를 치기에 물한잔을 들고 들어갔더니 수돗물은 못마시겠고 세븐업을 갖다달라고 기분나쁜 투로 얘기를 한다. 50대쯤 되어보이는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있는 아줌마. 입가에는 시커먼 솜털이 가득한게 테스타스테론 분비가 왕성한게 보인다. 냉장고에서 세븐업을 꺼내서 들고가니 빈컵에 얼음을 담아서 따라마실 수 있게 해달라고 휙 던지듯 말한다. 환자는 고객이고 고객은 왕인데 알겠습니다 하고 갖다주는 수 밖에는 없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경찰들하고 하는 대화를 들어보니까 이 아줌마 경찰따위는 무섭지 않은가 보다. 손가락을 휙휙 날리면서 욕을 늘어놓기를 주저 하지 않는다. 내가 얼음이 가득 담긴 컵을 가져다 줄때도 경찰하고 말싸움을 하고 있으니 대단한거 아닌가. 한두시간 쯤 지났을까. 경찰중에 한명이 와서 귀뜸을 하는데 아줌마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한다. 폐경기 전의 여성 환자나 꼬장부리는 환자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할때 나는 할일이 있다. 볼일볼때에 오줌 샘플을 남겨달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샘플은 랩으로 가고 거기서 마약을 했는지 임신은 했는지 등의 테스트를 한다. 사실 귀찮은 일이다. 환자한테서 통을 건네받을때 행여나 겉에 묻지는 않았을까 찝찝하다. 물론 장갑은 끼지만 그 장갑으로 봉지를 열어서 통을 그 안에다가 집어 넣어야 된다. 이러다 저러다 보면 극소량이 내 피부에 닿을 수도 있다. 그래서 손을 씻어야 된다. 귀찮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더 궁금했다. 과연 이 아줌마가 약을 해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말짱한 정신으로 이러는 건지 나는 참을 수 없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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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저것  |  2009.07.1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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